0.부여의 옥갑(夫餘的玉匣)
.三國志卷30-魏書30-烏丸鮮卑東夷傳第30-夫餘
부여는 장성 북쪽에 있다. 현도(玄菟)에서 천리를 가야하고, 남으로 고구려, 동쪽으로 읍루, 서쪽으로 선비가 접해 있고, 북쪽으로 약수가 있으며, 가히 2천리다.
<夫餘>在<長城>之北, 去<玄菟>千里, 南與<高句麗>, 東與<挹婁>, 西與<鮮卑>接, 北有<弱水>, 方可二千里.
음식을 먹음에는 모두 조두(도마와 굽이 달린 그릇)를 사용하고, 여럿이 모이면 절하고 술을 마시면서 잔을 닦아 돌리고 , 서로 절하고 양보하여 오르고 내린다. 은(은나라 달력)의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나라의 큰 모임으로, 연일 음식을 먹으며 노래와 춤을 하니, 이를 영고라 하며, 이때에는 형벌과 가둠이 없고, 죄인들을 풀어준다.
食飮皆用俎豆, 會同拜爵洗爵, 揖讓升降.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斷刑獄, 解囚徒.
한나라 시대에 부여왕은 옥갑으로 장사를 지내는데, 항상 현도군에 미리 맡겨 두었다가, 왕이 죽으면 가져다가 장례를 치뤘다. 공손연을 쳐서 벨 때 현도의 창고에 옥갑 하나가 있었다. 지금 부여의 곳간에는 수 대를 내려 온 옥벽과 규와 제기들이 있어, 대대로 보물로 전해졌으며, 노인이 말하길 선대로부터 하사 받은 것이라 한다.
<漢>時, <夫餘>王葬用玉匣, 常豫以付<玄菟郡>, 王死則迎取以葬. <公孫淵>伏誅, <玄菟>庫猶有玉匣一具. 今<夫餘>庫有玉璧珪瓚數代之物, 傳世以爲寶, 耆老言先代之所賜也.
.三國志卷30-魏書30-烏丸鮮卑東夷傳第30-夫餘-02/02’
<玄兎>庫猶有玉匣一具. 今<夫餘>庫有玉璧珪瓚數代之物, 傳世以爲寶. 耆老言先代之所賜也{《魏略》曰:其國殷富, 自先世以來, 未嘗破壞}
“현토의 ‘고(庫)’에 옥갑(玉匣)에 비유할 수 있는 일구(一具: 한 셋트(set)가 있다. 오늘 ‘부여’의 ‘고(庫)’에는 다양한 옥(玉) - 벽(璧), 규(珪), 찬(瓚) 등 여러 왕조(王朝)를 거쳐 나온 것들이 있다. 이는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보물이다. 나이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기를 ‘까마득한 선대(先代)로부터 내려진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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