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영국 육군의 예비역 대령인 제임스 처치워드가 쓴 책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에 보면 인도 고대 사원에는 1만년 이상 된 점토판 책들이 있고 동방의 어머니 나라 [무]에서 인도로 문명이 전파되어 왔다고 되어 있다.
[자료]정리가 잘 된 1만년 해민족 시원사-등하불명이라 했다. 멀리서 찾지 마라! 이 땅이 성지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무지해서 알지 못하고 있다. 신화와 고고학적 사료를 토대로 있는 그대로 근원을 찾아 가는 자들은 금방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지금의 해안선은 8천년전에 이루어진다.)
~ 1만5천년전 - 대체로 황해에 물이 빠진 상태. - 황해는 평원
1만5천년전 ~ 8천년전 - 물이 들이찬다.
1만5천년전 이상 전에는 대체로 지금의 서해 , 남해의 얕은 바다가 평야지대.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지금보다 날씨가 추웠으므로 당시 한반도 북부지방은 사람 살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고 위에 녹색 지역이 사람살기 좋았던 곳.
지구기온 상승에 따른 고대한국 중심지의 북상 <-관련글
1만5천년 전부터 지구기온이 갑자기 올라간다.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물도 급격히 높아진다. 그리하여 황해(+ 남해)평원(현 충청도, 전라도, 경남 앞바다)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세계로. 개를 데리고.
세계학자들에 의하면 개는 동북아에서 맨 먼저 길들여졌고 1만5천년 전부터 세계로 퍼졌다. 개는 혼자 이동하지 않는다. 개는 사람을 따라서 이동한다. 사람을 따라서.
[보강] 세계 개의 조상은 고대한국의 개 <- 관련글
1만5천년 전부터 바다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는데 [원조 마야인들(마문명인들)] 중 일부가 세계로 퍼졌다고 본다.
일부는 남한지역으로 일부는 북한과 만주로 일부는 북미로 (초기 인디언) 일부는 그리스 부근 바다 (에게해, 아드리아해 - 당시는 상당 부분 평원)로
등등등 세계곳곳으로 퍼졌다고 본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바로 [신석기 혁명]과 [초고대문명]이라는 것.
서양학자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이 처음 북미로 온 것이 약 1만4천년전 이라 본다. 그들은 최초의 인디언이 시베리아에서 이동해 왔다고 하는데 그들은 황해평원 마문명에서 시베리아를 거쳐서 북미로 갔다고 본다.
1만5천년전 이전에는 최소한 수만년간 대체로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추웠고 시베리아도 지금보다도 훨씬 추웠다. 사람 살기가 어려웠다. 문명이 자생적으로 발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그들은 원래 시베리아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마문명에서 이동해간 사람들로 본다.
그런데 1만5천년전부터 퍼진 그 문명들은 많이는 계승되지 못한 것 같고 다시 [1만2천년전~8천년전] 사이에 지구바다가 높아지면서 대부분 물속에 가라앉아버린다.
문명은 보통 [바다에서 너무 멀지않은 낮은 평야지대]에서 발전하는데 (그런 곳이 사람 살기 좋으므로) [1만2천년전~8천년전] 사이에 대부분 바다속에 가라앉아 버린것.
위 그림들은 한국에서 고인돌, 천손신화, 난생신화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대강 보여주고 있다.
중국대륙에도 한국에서 전해진 천손신화, 난생신화가 널리 퍼져 있었는데 후대에 말하자면 [중국의 자존심]에 의하여 사라진 것으로 본다.
한국은 [고인돌의 원조국]이고 천손신화와 난생신화가 모두 다 있는 곳.
난생신화 - 조상이 알에서 나왔다는 신화. 천손신화 - 하늘의 자손이라는 신화.
난생신화는 쌀농사와 함께 1만년 이상 전부터 동남아, 인도 등으로 퍼진 것.
1926년 영국 육군의 예비역 대령인 제임스 처치워드가 쓴 책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에 보면 인도 고대 사원에는 1만년 이상 된 점토판 책들이 있고 동방의 어머니 나라 [무]에서 인도로 문명이 전파되어 왔다고 되어 있다.
위 지도에서 보이듯이 무대륙이란 고대에 육지였던 황해대평원과 태평양의 낮은 지역들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 특히 황해는 수심이 가장 낮아서 가장 오랬동안 육지였던 지역.
[황해평원 마문명]에서 퍼져나간 [어머니 나라 - 무]의 문명 수준은 어떻했을까. 물론 이 또한 현재 정확히 알수 없지만 전편에서 다룬 [오키나와 피라미드]가 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위 오키나와(= 류큐 = 유구) 피라미드는 수심 약 20~25m 지점에 위치해 있으니 약 1만년전에 바다에 잠긴 것으로 본다. 당시 마문명의 수준은 최소한 저 정도. 당시 인류가 살기 가장 좋았던 황해대평원에서 보면 당시에도 오키나와는 변방 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저정도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를 보면 마문명의 중심이었던 황해대평원의 문명은 저보다 훨씬 더 수준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오래전 문명이라고 무조건 무시하면 안된다. 현대 과학기술로도 [고려청자]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고조선 고유문명인 [다뉴세문경]도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1만년전 마문명이 단지 돌도끼나 갈던 정도의 문명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현대인의 선입견, 무지 또는 오만 때문이라고 본다.
17세기 서양인들은 대부분 과학이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한 갈릴레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인도는 범어(산스크리트어)가 들어오기 전에 드라비다어라는 것을 썼다. 드라비다어는 지금도 많은 인도인들이 쓰고 있는데 한국어와 근본적으로 너무 비슷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그에 대한 글들도 가면 갈수록 많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인도 드라비다어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어가 되지 않았나 하는 소리까지 나오는데 이는 황해평원 마문명을 생각하지 않은 데서 나온 착각. 사실은 1만년 이상 전에 일부 고대한국인들이 인도로 이동하고 그들의 말이 지금의 드라비다어의 뿌리로 본다.
그리고 전편에서 밝혔듯이 실제로 한국에서는 세계최초의 쌀농사 유물이 발견되었고 (충북 청원 - 1만5천년전 것.) 이 재배볍씨 중에서는 한국,일본에서 많이 기르는 쌀인 [자포니카]쌀과 함께 현재 동남아, 인도에서 많이 기르는 [인디카] 쌀도 발견되어서 자포니카와 인디카 모두 한국이 원산지 임을 밝혀주고 있다. ( 전세계 쌀은 크게 자포니카와 인디카로 나뉜다.)
즉 세계 모든 쌀의 원산지가 한국. 고대한국에서 기르던 개가 1만5천년전부터 사람을 따라서 이동하여 전세계 개들의 조상이 되었듯이 고대한국에서 기르던 쌀도 전세계 쌀들의 조상이 된 것.
한국의 [원조 쌀농사]가 세계로 퍼져나갔다. <- 관련글
인도에는 크게 2가지 언어가 있다. 1. 드라비다어 2. 범어 (산스크리트어)
둘다 고대한국에서 전해진 언어. 단지 전해진 시기가 다르다.
드라비다어가 더 먼저 인도에서 사용되고 있었고 (1만년 이상 전부터) 드라비다어는 인도 남부에서 먼저 쓰기 시작한다. (난생신화)
그런데 그보다 수천년 후에 [아리안]이 인도 북부로 들어오게 된다. (천손신화) 그들의 말인 범어가 인도북부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한다.
[알타이 파지릭 고분에서 발굴된 그림]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당시 제1계급 [브라만] 동북아인의 모습. [브라만]은 인도로 들어온 [아리안]을 말하는 것이고 7천년 전에 이미 중앙아시아에 나타났다는 [아리안]은 고대 한국인들의 이동으로 본다. 고대 인도에서는 민족에 따라서 계급이 나뉘었던 것으로 본다.
이처럼 인도에는 크게 보면 2번의 문명전파가 있다.
1) 1만년 이상전의 황해평원 마문명의 전파( 쌀농사, 고인돌, 난생신화) -> 드라비다어
2) 8천년전 이후의 [고대한국 -> 중앙아시아 -> 인도]의 문명의 전파. -> 범어 (산스크리트어)
[고대한국어]가 건너가서 [인도 범어(梵語)]가 되었다. <- 관련글
수메르인들 (어디선가 나타나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 역시 아리안의 일종으로 본다. 그들은 6천~7천 년전에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머리카락이 검은 사람들]
[5천년전에 만들어진 수메르 왕조 지도자 '구데아(gudea)'의 인물상]
수메르의 말이 한국어와 비슷하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밝혀낸 바 있다.
고대 이집트에도 고대한국인들의 모습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얼굴이 넓적하고 쌍꺼풀이 없는 동북아시아적인 얼굴.
역시 동북아시아적인 얼굴. 이집트의 여왕 하트셉수스의 묘지에 있다.
[아주 고대의 이집트 왕족들] - 이집트 창건의 전설적 인물인 [Tiu(티우)] 관련 왕족들.
[스핑크스]
스핑크스는 코가 떨어져 나갔는데 (후대에 어느 군대의 대포에 맞았다고 한다.) 얼굴이 사람(여성) 그런데 광대뼈가 튀어나온 동북아 여성의 얼굴!
인류문명의 시원과 전개를 총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어찌 쉽기만 하겠는가. 하지만 이미 밝혀진 것만 하더라도 많은 것이 드러나 있다 하겠다.
일단 한반도 주위의 상황부터 보자.
1만5천년전부터 지구기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바다물이 밀려들고 1만4천년 전에는 마문명이 지금의 경기, 충청, 전라, 경남의 앞바다 지역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위 지도에서 보이듯이 경기, 충청, 전라, 경남의 앞바다는 수심이 낮다. 즉 가장 마지막에 바다물이 들이 찼을 것이다.
1만5천년전~8천년전까지 다시 지구기온이 올라가면서 바다물이 들이차고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은 현 남한지역으로 대대적으로 올라온다.
전남 화순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 즉 8천년전 고인돌이 있는데 이는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이동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강원도 양양군에서 발견된 8천년전 빗살무늬토기 역시 마찬가지.
빗살무늬토기(한국)
빗살무늬토기 : 한국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퍼지다. <- 관련글
물론 한반도에도 8천년 이상에도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한반도가 비교적 높은 지대였고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아서 (당시에는 사람들이 대부분 황해, 남해 평원에서 살아서) 8천년 이상 전에는 한반도에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8천년 이상 전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겠다. 한반도의 황해, 남해속에는 8천년 이상 전의 수많은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가 묻혀있을 것이다.
고인돌, 빗살무늬토기는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문화로 본다.
왜 한반도에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는지 왜 한반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들이 있는지 이러한 상황이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다 하겠다.
[고인돌(전남 화순)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눈에 보기에도 참 오래된 고인돌들이다. 현재 확인된 것이 8천년전 것.
저 돌의 아래에 땅을 파고 석관을 만들고 사람을 매장했다.
사람을 매장하지 않은 고인돌들도 있는데 이는 제단(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인 것으로 본다.
저렇게 큰 돌을 옮겨서 세웠다는 것. 이상 고인돌 (전남 화순)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songjukmae/12153933?nil_profile=blog
강화도 고인돌 (북방식 고인돌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진 출처 - http://cafe133.daum.net/_c21_/home?grpid=dfsj
경상북도 창녕 고인돌
전북 고창 고인돌
황해남도 은율군 관산리 고인돌
강원도 양구 고인돌 (장승(황헌만 사진, 이종철 외 3인 지음, 열화당, 1993)에서 인용)
[고인돌 집중지역]
고대황해평원 마문명에서 남한땅에 전해진 고인돌문화는 차차 황해도 등으로 북상한다.
대동강에서 제주도까지의 영역은 세계고인돌의 절반이 몰려있는 대단히 특수한 곳.
[한반도 남부]의 고인돌문화는 차차 [한반도 북부와 만주]로 전파된다.
[고인돌 분포도]
고인돌 문화는 차차 퍼져서 한반도 북부와 만주로 전파되고 산동반도와 일본 규슈 지방으로도 전파된다.
물론 산동반도의 고인돌도 한국보다 훨씬 늦은 것들이고 일본의 고인돌은 한국보다 5천년 이상 늦다.
일본의 고인돌은 약 2천4백년전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전해준 것인데 그들은 쌀농사와 금속문명도 같이 전파해준다. 그전까지 일본은 원시석기시대였고 기원전 4백년에 한국인들에 의해서 문명화된다. 이것을 학계에서는 [야요이(彌生) 문명]이라 부른다. 이때가 되서야 일본은 비로소 원시석기시대에서 벗어난다. 한국보다 최소한 수천년 늦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 지식인들의 심각한 [역사 컴플렉스]가 되어 일제 때 극심하게 한국고대사를 왜곡, 날조하게 된다.
벼농사, 금속문명도 일본에 가르쳐준 한국 <- 관련글
남한강 발원지.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검룡소[儉龍沼]의 검[儉]자는 [단군왕검 檀君王儉]의 검[儉]자. 게다가 주변 가까운 곳에 [태백산 천제단]이 있다.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강줄기를 거슬러 왔다]는 얘기는 고대 황해대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이동으로 볼수 있는 것 같다.
고대부터 한강이 얼마나 중요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고 한반도 북부보다 한반도 남부에서 먼저 문명이 꽃피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라 하겠다.
이렇게 주로 한반도 남부, 중부 지역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황해평원을 [마]라 불렀듯이 한반도 중남부를 [마]라 불렀고 이 지역은 나중에 [마한]이라 불리게 된다. 저 [황해평야 대강]을 고대한국인들은 [밀이내(미리내)]라 불렀을 것이다. [밀이의 강]이라는 것. [밀이]는 [마 사람(이)]이라는 뜻이고 지금도 한국에서는 사람들을 칭할때 [무리(물이)]라는 말을 쓴다. [말(언어), 멀이(머리), 물이(무리)] 당시 사람들은 황해평원을 [ㅁ.] 라 불렀을 것이다. [ㅁ.]는 [ㅁ.ㄴ] , [ㅁ.ㄹ]로도 변화 발전한다. ( ㄴ 과 ㄹ 은 현대 한국어에서도 ~한, ~할 등에 쓰여서 단어를 [근본은 같게] [사용은 다르게] 변화시킨다.)
말(언어)도 원래 [마]에서 쓰던 것이고 멀이(마 사람)이 머리 즉 지도자였다. 지도자는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하므로 멀이(머리)라는 말은 인간의 두뇌를 뜻하는 말로 변화한다. 나중에 [미리내(밀이내)]는 [은하수]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원래는 땅에는 땅의 미리내 - 대강(大江) 하늘에는 하늘의 미리내 - 은하수 대강이나 은하수나 둘 다 남북으로 걸쳐 있는 큰 강. 고대한국어로 용(龍)을 [미르(밀으)]라 한다. 한국어로 [사람들]을 [물이(무리)]라 한다. [물이(무리)]와 [밀이(미리)]는 근본이 같은 말로 본다. 황해대강은 대표적 [물]이었고 곡식 [밀]도 황해,남해 평원에서 처음 기른 것으로 본다. 쌀농사가 한국이 원조인 것이 밝혀진 것처럼 밀농사도 한국이 원조인 것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 본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 국보 제228호 조선 태조 4년(1395)에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천문도 각석. 한국 하늘의 별들을 돌에 새긴 것. 위의 둥그런 [노란 강]이 바로 미리내(밀이내 - 은하수) 그런데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좌우가 [서동(西東)]이 아닌 [동서(東西)]로 되어있다. 동 서 으로 되어있는 것. 위 그림처럼 북 현무 동 청룡 서 백호 남 주작 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
이것을 동과 서를 바로잡으면 은하수의 모양은 다음과 같이 반대방향이 된다. 은하수는 대강 위 그림처럼 왼쪽(서쪽)으로 불룩한모양. 서울을 지나는 한강(漢江)이 왜 은하수 한(漢)자를 썼는지 알수 있다. [한강 미리내(은하수)]를 보시라. 위 그림은 서울 한강이 대강으로 흘러 바다로 나가는 모습. 하늘의 은하수와 같은 모습. ( 북한강은 금강산 부근에서 시작하고 남한강은 태백산 부근에서 시작한다.) 은하수를 한자로 [천한(天漢)] 즉 [하늘의 한(漢)]이라 하듯이 (백과사전 ->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0045900) [한강 - 황해 대강]은 그냥 [한(漢)]이고 은하수는 [천한(天漢)]인 것. [한강(漢江)]이 왜 [한강(韓江)]으로 안불리고 [한강(漢江)]으로 불려 왔는지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런데 고대 기록의 한강 즉 한수(漢水)는 3군데. 한강, 대동강, 압록강을 모두 한수(漢水)라 부른 기록이 있다. 그 이유는 다음 그림을 보면 쉽게 아실 수 있다. [대동강 미리내] 고대에 나오는 한수(漢水)라는 기록은 한강, 대동강, 압록강 중 하나다. 3강을 모두 한수(漢水)라 불렀다. 중국의 한수(漢水)라는데는 양자강 지류에 불과한 일종의 [모방] 이는 [원조인 한국 김치]와 일본 기무치의 관계와 비슷하다. [한(漢)]자가 가리키는 [종족이름]은 원래는 한국민족을 가리킨다. [황해평야 대강] 지역 특히 그 동부에 살았던 민족이 한민족. 즉 한민족의 [한] 이라는 말을 표현하는 한자가 桓(한), 韓(한) 뿐만 아니라 漢(한)도 있었던 것. 그래서 서울에도 [한강(漢江)]이 흐른다. 즉 고대 한민족은 [서울 한강]을 [황해대평원 한강(대강)]으로 흘러드는 [대표적인] 강으로 보았던 것. 원조 漢(한)민족은 한국민족을 가리킨다. 한족(漢族)의 비밀 <- 관련글 강북 ㅣ --------------------------------------- ㅣ <- <- <- 서울 한강(漢江) ㅣ ㅣ-------------------------------------- ㅣ ㅣ 강남 ㅣ ㅣ ㅣ ㅣ 경기도 ㅣ ㅣ ㅣ 한강 ㅣ ㅣ (漢江) ㅣ 충청도 ㅣ ㅣ ㅣ = 황해 ㅣ ㅣ 대강 ㅣ 전라도 ㅣ ㅣ
[원조 한족(漢族)]은 [황해대평원 대강 즉 한강(漢江)]의 동쪽에 살고 있던 민족. 그 민족은 스스로를 태양민족, 하늘민족이라는 의미로 [한]이라 불렀고 그 [한]을 한자로 쓴 것이 [桓(한)]이고 [韓(한)]이고 [한(漢)] 황해대강(大江)의 이름이 [한(漢)]이었다는 것은 한라산 [漢拏山]의 위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전편에 나왔던 호주 시드니대학 보고서의 그림. 위 그림에서 보이듯이 황해대강은 한라산을 향하고 있다. 한라산[漢拏山]의 한자 뜻은 한[漢]을 끌어당기는[拏: 당길 라] 산이라는 뜻. 절묘하지 않은가. 실제로 한라산[漢拏山]은 한[漢] 즉 황해대강을 끌어당기고 있다! 황해대강은 한라산을 향해서 흐르고 있다! 그래서 한라산은 한라산[漢拏山]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한라산 [漢拏山]이 한라산 [漢拏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희한하다. 사람들이 다 잊어버렸던 황해대강의 존재를 한라산은 그 이름으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외치고 있었다.
1만 2천년전 낙동강 하류 김해평야 삼각주 기름진 들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지금의 부산 앞바다가 당시에는 평야지대.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부산이 한국 제2의 도시인 것처럼. 고대의 낙동강 삼각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 위치는 지금의 부산, 마산 앞바다.
삼각주는 농사짓기도 좋고 바다와도 가까와서 사람들이 많이 산다. 지금의 낙동강 하류 바다속에도 많은 고대 유물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낙동강 삼각주 마문명]은 [영남문화권]의 뿌리가 된 것으로 본다. 습관처럼 [마...그래서...마...그런데...마...]하는 [마...문화권] [영남 문화권] 위 [영남 문화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8천년전 배가 발견된 곳.
배만들기(조선)도 한국이 세계 최초 <- 관련글
[울산 반구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 - 영국 BBC “한국이 고래잡이 세계 최초” <- 관련 기사
위 반구대 암각화는 8천년전 것. 그런데 저 그림에는 배타고 멀리 나가야만 볼수 있는 큰 고래들 그림이 자세히 그려져 있고 실제로 배타고 나가서 고래잡이하는 그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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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앞날 되시기를]
[꿈은 이루어진다]
[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출처 :한국고대사 원문보기▶ 글쓴이 : 흐르는강물처럼
태평양에서 사라진 마(무)대륙...언어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태양을 숭배한 마(무)족의 후예인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무.마.고구마.마고라는 말들은 사라진 대륙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무우
마
* 사라진 무(마)대륙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 엄연히 살아 숨쉬고 있다.
사라진 무대륙의 모양이 바로 무나 마처럼 생겼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
'무'는 '마'다..한민족 시왕모 마고는 마문명 계승자다.한국의 종교가 무교(무대륙의 국교=천.지.인합일신앙)다. 마문명이 존재한 태평양지역과 가까운 한반도지역을 단국3연방시대에 마한(마고한국)이라고 부른 이유가 마문명이 바다속으로 사라진 후에 마고후손들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지역으로 이주해 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세계최다 고인돌분포지역이 한반도다.고인돌에는 마고전설이 깃들어 있다.제주 창조신이 마고다.고로 기독경에서 말하는 지상낙원(불만이 없이 만족한 나라)이였다는 에덴동산설화의 시원지는 마문명이 존재한 무대륙이며, 마문명의 후예들이 이주해 온 한반도지역이 다시 지상낙원으로 설정되었고, 한국.배달국시기에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경유하여 중앙아시아지역으로 이주한 고대한국인들에 의해서 천산지역이 이전원으로 전승되었고, 중동지역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슈메르인들)에 의해 중동지역(메소포타미아지역)으로 설정되었다고 보아야 맞다.
아득한 옛날, 지금의 태평양이 있는 위치에 '무(Mu)'라는 광대한 대륙이 있었다. 그 동쪽 끝은 현재의 이스터 섬, 북쪽 끝은 하와이 제도, 서쪽 끝은 마리아나 제도, 그리고 남쪽 끝은 지금의 쿡 제도에 해당한다. 동서의 길이는 8천 킬로미터, 남북은 5천 킬로미터로 지금의 태평양 면적의 절반 크기다.
이 무 대륙에 인류가 나타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5만 년 전의 일이다. 이곳에 살았던 인간은 매우 우수한 민족으로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고 있었다. 무 대륙의 인구는 약 6천4백만 명이었고, 열 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머리색, 피부색, 눈의 색은 제각기 달랐지만 각 민족 간에 차별은 없었고, 한 명의 왕 밑에 하나의 정부가 통치하고 있었다. 무 제국 국민은 우수한 학문과 문화를 가졌고, 특히 건축술과 항해술이 고도로 발달해 이었다. 그들은 진취적인 기질이 풍부하여 배를 타고 세계 각처를 떠돌았다. 서쪽으로는 아시아, 유럽, 이집트와 교류했고, 동쪽으로는 북아메리카 중부에서 남아메리카 북부까지 진출하여 그곳에 자신들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무 대륙에는 낮은 동산 이외에는 산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는데, 땅 전체는 세 개의 좁은 해협에 의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문화의 중심지였던 일곱 개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로가 격자 모양을 이루며 도시와 마을을 연결하였고, 그 표면은 대리석으로 잘 포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석조 궁전과 신전과 호화로운 대저택들이 관청을 에워싸고 있었다. 항구마다 세계 각지로 떠나는 배로 분주 했으며, 세계 각지에서 진귀한 물건을 가득 싣고 온 수십 척의 배기 항구로 들어왔다. 태양을 숭배하교 세계를 지배했던 무 제국은 날로 번영했다. 왕권은 튼튼했으며, 모든 국민은 행복한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거대한 대륙은 발밑으로 다가오는 불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땅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대지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신전에 몰려들어 태양신에게 기도하고 있을 때, 대지가 갈라지며 지옥의 불길 같은 거대한 불기둥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 첫 번째 대지진으로 무 대륙 남쪽을 대부분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산보다 더 큰 해일이 대륙 남쪽을 강타하고, 용암이 들끓었다.
무 대륙의 국민들이 일차 대지진의 공포를 잊고 폐허 위에 신전을 재건할 무렵, 다시 땅이 요동을 치고 바다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대지는 바가 위에서 나뭇잎처럼 흔들렸다. 대륙의 중앙에 굉음이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무 대륙은 조각조각 갈라지며 바다 밑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태평양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거대한 무 대륙이 바다 속으로 잠기자, 전무후무한 해일이 지구 곳곳을 덮쳤다. 지금으로부터 1만 5천 년 전, 지구가 생긴 이래 최초이자 최대의 문명을 건설했던 무 대륙은 이렇게 사라졌다.
[나칼 점토판] 인도 원주민들 사이에 전설로 내려오는 뮤 대륙. 인도의 낡은 힌두교 사원에서 뮤 대륙에 관한 사실이 적힌 두 개의 옛 점토판으로부터, 원주민들 사이에 전승된 무 대륙이 상상의 땅이 아니라 실제로 태평양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문명이 발달했던 대륙이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두 개의 점토판에는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도형과 기호 같은 것이 빽빽이 새겨져 있다. 점토판은 신비한 모국(母國)인 뮤에서 보내진 것이었다. 1만여 년이라는 세월에 부식된 점토판에서, 그리고 점토판에 새겨진 고대 상형 문자는 뮤 대륙의 '거룩한 영감의 책'이었는데, 뮤 대륙의 건국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점토판에 새겨진 뮤 대륙의 건국 설화는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설화와 비슷하다. 뮤 대륙은 왕성한 해상 활동을 했으며 인도와 이집트, 그리고 시나이 반도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모세는 우연히 이것을 입수해 석판에 다시 새겼을 것이다.
이를 '나칼 비문'이라 명명하고, 이후 멕시코의 광물학자 윌리엄 니벤이 고대의 석판을 수천장 수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멕시코 석판이 나칼 비문보다 1만 년 후에 아메리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처치워드- 뮤 대륙은 인류의 어머니 나라가 된다.
[나칼 점토판의 해석]
'라마야나'에 '동방의 미지의 땅에서 미얀마로 온 것'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동방은 바로 태평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트로아노 고사본'은 유카탄 반도와 고대 마야족에 대한 기록인데, 여기에도 뮤 대륙이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인도나 미얀마, 이집트에서 발굴된 상형 문자는 모두 나칼 점토판에 새겨져 잇는 뮤 제국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직접적인 기록 말고도 뮤 대륙이 실재했다는 증거는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다고 추측한다. 이스터(모아이), 망가이, 마리아나 제도 등 남태평양의 섬들에 남아 있는 온갖 유적에서 뮤 대륙의 자취가 발견되고 있고, 유카탄 반도의 우슈말 사원 비문에 새겨진 '서방의 나라, 우리는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표현도 그 증거의 하나다. 멕시코시티 남쪽에 있는 피라미드의 비문에는 '어머니 나라의 붕괴를 기념해 세웠다'라는 구절이 있다.
화산폭발과 재앙에 의해 함몰한 나라의 이름은 두개의 마야 그림문자를 보고 MU라 읽는다.
지금의 환태평양 화산대는 태평양 지저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가스실(체임버)로 연결되어 있다. 가스 체임버는 지저의 화산 활동에 의해 땅 속에서 발생하는데, 이 가스는 매우 폭발하기 쉬운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지각을 형성하고 있는 화강암에 벌집과 같은 구멍을 뚫는다.
어떤 계기로 이 가스가 지상으로 빠져 나오면, 다음은 아주 불안정한 공동(空洞)이 되어 간신히 지각을 지탱한다. 만약 이 지탱하는 힘이 약해져 천장이 무너지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땅 속의 공동은 다음에서 다음으로 무너져 내리며 대함몰이 시작되는 것이다.……뮤 대륙 아래에 있던 이 가스층은 매우 얕아서, 지표면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가스 체임버가 깊은 지층에 있을 경우, 지표는 가스의 팽창력에 들려지면서도 갈라지지 않고 견딜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산맥의 형성이다. 그런데 '트로아노 고사본', '코르테시아누스 고사본', '라사 고사본' 등의 옛기록을 보면 뮤 대륙 최후의 날에 대규모적인 융기가 일어났다는 내용은 없다. 다만 "두 차례 흔들리며 올려졌다..대지는 두 차례 튀어올랐다."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우선 조그만 가스 체임버가 팽창하면서 주위의 다른 가스 체임버에 충격을 주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하나의 커다란 가스체임버가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폭발을 일으켜 지표를 갈갈이 찢어 버림으로써 뮤 대륙은 함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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