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지나대륙을 지배한 청나라 황족의 성씨는 신라를 잊지 말고 사랑하자는 '애신각라'다. [欽定滿洲源流考(흠정만주원류고]는 신라 마의태자의 아들 김행의 후손들이 세운 김(금)나라를 계승한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다. 금(김)나라 황실의 역사서는 [금사]다. [금사]에는 김나라를 세운 개국시조 아골타의 선조는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주한 신라출신의 고려인으로 불교에서 개명한 법명 김함보(김행)로 기록되어 있다. 전북 부안 김씨는 신라 마의태자 후손들인데, 부안 김씨족보에는 마의태자 아들 중에 한 사람이 고려를 떠나 만주로 이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금사]에 기록된 아골타의 선조 김함보는 마의태자 아들이 틀림없다 할 것이다.
[사료]'만주원류고'가 기록하고 있는 신라영토는 기존의 내용과는 다르다
청나라 황실 역사서[만주원류고]가 기록하고 있는 고구려.백제.신라 영토


여진족 추장시절 조선에 벼슬을 청했다가 거절당했던 누르하치가 지나대륙을 통일한 청나라 시조가 되었다. 누루하치 아들로 황제에 오른 홍타이는 오랑캐 취급을 하며 아버지 누루하치를 멸시했던 조선을 공격하여 조선왕 인조의 항복을 받아 내니 병자호란이라 불리우는 조.청 전쟁이다. 당시 소중화 사대주의에 빠진 조선이 얼마나 국제정세의 흐름에 둔감했고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는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지나대륙을 통일한 청나라는 백두산을 성산으로 삼고 지나족이 청나라가 일어나 해민족의 성지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지 못하게 하였다
청나라 황족의 후예로 공주라고 한다.생김새가 우리와 똑같다
신라의 영토확장은 4세기에 유입된 모용선비족이 세운 신라가 초원을 누비던 기마세력이였기 가능한 일이였다. 왜군의 침략으로 국가위기에 처한 신라를 5만의 군대로 지원한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고 태자들을 인질로 보내야 했던 100여년간의 고구려의 제후국에서 탈피하게 된 이후 강력한 개혁을 단행한 법흥왕은 군대도 중앙으로 단일화하여 외침을 방어하게 되었고 진흥왕 시기부터 영토확장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러한 지도는 화랑제도를 만든 진흥왕 시기로부터 출발한다 할 것이다.
[만주원류고]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백제가 멸망한 "당(唐) 현경 건봉 이후 백제와 고구려의 땅이 많이 신라에 편입되었는데 동서로 9백리가 더하여 졌고 남북으로 1천여리가 더하여 졌다." (唐顯慶乾封以後 百濟髙麗之地 多入新羅 東西增九百里 南北增千餘里) ..(당나라는)현경 顯慶 5년 명을 내려 소정방蘇定方에게 <웅진도 대총관熊津道大總管>의 직함을 주어 육해군 10만을 거느리게 하였다. 또한 영을 내려 김춘추春秋에게 <우이도 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의 직함을 주어 정방定方과 함께 백제를 평정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신라는 점점 고구려와 백제의 땅을 차지하여 그 경계가 더욱 커졌다...3년 조칙으로 그 나라를 <계림주 도독부 雞林州 都督府>로 삼고, (살피건대 <계림雞林> 과 지금의 <길림吉林> 은 발음과 지리가 함께 부합한다. 이 때 신라는 이미 백제 고구려의 땅과 말갈을 함께 아울렀다.
[만주 원류고]개원(開原)은 즉 한(漢)나라 때 부여국(夫餘國) 경계로 백제(百濟)의 옛 나라이다. 통고(通考)에서 말하는 ‘신라 서북 지경이 고려와 백제의 사이로 튀어 나왔다’고 한 것은 곧 이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 뒤 모두 발해(渤海)에 병합되었다. (開原 即漢時夫餘國界 百濟之舊國也 通考謂 新羅西北界 出髙麗 百濟之間者 應即指此 其後皆併于渤海)
『요사 遼史』 지리지 당唐 원화元和 연간에 발해왕 대인수 大仁秀 가 남쪽으로 신라를 정벌하여 군현을 개설하였는데 해주海州 암연현巖淵縣 동쪽 경계는 신라이다. 그런고로 평양성은 암연현의 서남에 있다. (遼史 地理志 唐元和中 渤海王 大仁秀 南定新羅 開置郡縣 海州巖淵縣 東界新羅 故平壤城 在縣西南)
『요지遼志』에는 “해주海州 (현 해성, 처음에는 백제에 속하다가 뒤에 고구려에 의해 분할되었고 다시 발해에 합쳐졌다. 다시 요나라에 병합되었다.)의 동쪽경계는 신라이다” (遼志所云 海州 [即今海城 始屬百濟 後為髙麗所分 復入渤海 又歸于遼] 東界新羅是也)

서기 816년에 "굶주린 신라인 1백 70명이 절강동도(절강성 동부)로 몰려들었다."(『삼국사기』「신라본기」헌덕왕조)
"신라산(新羅山)은 현 남쪽 2리에 있으며, 신라국 임금의 묘당이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有新羅國王廟焉故名).”―『절강통지』에 실린「평양현지(平陽縣志)」
월주지역의 신라방은 마한의 해상세력인 석탈해 왕조(사로국) 때 부터 개척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 월주지역까지 해류는 봄과 가을을 주기로 교차하기 때문에 봄에 한반도에서 떠나고 가을에 한반도로 돌아 오는 항로를 택하였다. 월주지역에 고인돌들이 분포하는 건 고대부터 항로를 통하여 교류하였고 월주지역에 한반도인들이 정착했음을 의미한다. 동성왕이 시해당하고 무녕왕이 즉위하는 백제 혼란기에 해당하는 고구려 문자명왕 때 지나지역의 백제담로을 차지하고 천주지역으로 신라인들을 대거 이주시켰다는 [환단고기-고구려본기]기록이 나오는데, 이 때 이주시킨 신라인들은 월주지역의 신라인들이다.


나라와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우리는 모두 마고.환인.환웅을 계승한 단군천황의 후손들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하나의 조상을 찾고 뿌리를 찾아 하나가 되자는 것이다. 그런 고로 조상과 뿌리를 찾아 가는 역사의 진실을 날조하여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 자들이나 나라는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김(윤)대중 KOREA태왕은 한반도와 유라시아 철로를 이어 해머리땅을 대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무역.정보.문화의 심장부로 만들자고 하였다. 역사가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지역의 해민족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작업이라면 정치는 교류하게 하고 협력하여 대동홍익세계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청나라 사서[만주원류고]-신라 기원과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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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삼태극
글쓴이 : 윤복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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