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의 눈으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동북공정 논란을 보면 무엇이 보일까.
고대 고구려의 역사와 중국의 역사는 과연 같은가 다른가.
동북공정을 시도하는 오늘날 중국의 권력자들에게 과거 중화주의는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가.
중국은 지금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편입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는 중국이 그 동안 표방해왔던 주변국과의 평화 선린외교 노선을 버리고 실제적으로는 대중국주의에 기반하여 마오쩌둥 이래로 진행되어온 대중국민족주의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문화 중국(Cultural China)’이라는 표방 속에서 전혀 다른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던 동아시아 제 민족을 중국의 하위 문명 체계로 포섭하려는 전략으로서 동아시아에서의 긴장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여 향후 중국과 중국민을 항구적인 잠재적 전쟁 상태에 빠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치우의 ‘구려’국(청구국) 이래로 고조선, 대부여, 북부여에 이어 발해, 요, 정안국, 금, 청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중국과는
구별되는 문명을 900년 간 유지해 온 나라다.
동아시아 평화 위협에 직면
그럼에도 불국하고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자민족의 일부로 포섭하려는 억지를 부리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는 우리 민족의 대응도 결국은 올바로 될 수 없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고구려가 어떤 나라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 선조는 누구이며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간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멸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를 정확히 이해하여야 우리는 고구려가 우리 민족에게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있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바른 대응을 할 수 있다. 또한 동북공정의 전사와 현재, 그리고 중국의 고민을 이해하여야 한다.
혈맹인 북은 스스로 고구려의 후신임을 주장해오고, 고조선의 정통 계승자임을 주장해 온 터이기 때문에 중국의 동북공정은 정확히 말해서 북에 대한 정치적 도발(?)의 의미도 지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매우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감수하고 어마어마한 자금과 인력을
투여해서 감행하려는 그 허구적 노력을 우리는 똑똑히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학계와 남북 당사자들의 대응이 가지는 높은 의의와 낮은 수준의 대응,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가 판단하건대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일본과 청에 의해 불법적으로 맺은 조약인 간도협약을 미연에 정당화하면서 중국 내 조선족의 민족적 정체성을 파훼하여 향후 벌어질 수 있는 만주와 관련된 영토적, 정치적 갈등을 막고 중국의 국가주의적 제국주의의 목적에 맞게 기정사실화 하려는 데에 그 근본적인 의도가 있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깊은 연구를 촉진시키는 동시에, 역사적 사실의 허구적 날조에 대한 국제적인 폭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아울러 동아시아에서의 중국 내 극소수 지배 엘리트들의 중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기반한 제국주의자들을 고립시키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민중과 제 민족들의 연대를 고취하는 일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화 제국주의는 일면 영토문제로 인한 갈등과 긴장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방어적 목적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한다. 한편으로는 영토적 진퇴를 둘러싼 제 민족의 영욕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와는 별도로 발호하는 위험한 세력인 각국의 민족주의가 실은 지배 엘리트들이 각국의 민중들을 호도하고 수탈하며 민족의 가치와 이익에 반하여 권력을 유지·강화하여 자국내 및 국가간 민족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흉악무도한 무리임을 폭로하여야 한다.
화이 제국주의 실현의 걸림돌 된 고구려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적 고유성에 기반한 새로운 미래 문명을 고취시켜서 민족의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에 언제든지 동원될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인 민족주의를 각국의 민중들이 외면하여 각 민족간의 평화 연대를 위해 일하여야 한다.
동아시아 평화 체제의 구축이라는 우호 선린 사상을 고취하는 일이 올바른 대응 자세이다. 영토적 야심에 기반한 중화 제국주의만큼이나 영토에 연연한 민족과 역사 의식은 위험한 것이다. 오히려 민족의 바른 정체성을 위협하는 모든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견결한 대응이 중국 민족과 우리 민족 그리고 여타 많은 동아시아의 공통된 역사 기반 위에 살아간 제 민족들의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올바른 행위이다.
영토란 국가의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민족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 조선 민족은 남에서도 미국에서도 북에서도 중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어떠한 나라에서도 살아갈 수 있으며, 인류의 평화·행복에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면서 민족의 고유성을 버리지 않고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영토란 잃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영토로 인해 민족의 생존을 버릴 수는 없으며, 더군다나 국적에 의해 민족의 고유한 가치와 문화가 파괴될 수 없다.
지난날 서구 제국주의가 비서구인들을 노예화하고 조선의 문화를 열등시하며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조선인임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일들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이 그들 서구인들의 야만적인 문명에 경도되어 세계의 피압박 민족들의 가치를 부정하고 심지어 제 나라 언어와 글자로 민족을 없애려 하였어도 그들의 간악한 시도가 어떻게 붕괴되었는가를 조선 민족은 잘 보여주었다.
고구려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서 이미 9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영위하고 있었다. 치우의 구려족에서 부여 일파를 통합한 고구려는 한나라와의 투쟁 속에서 성장하였고, 연나라를 정복하고, 내몽고를 장악하여 바이칼호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가야족인 거란를 아우르고 있었고, 가야족의 가장 큰 분파인 말갈족은 고구려의 가장 중요한 부대가 되어 있었다. 거란, 말갈, 선비족까지 통합한 고구려는 흉노와 연대하여 중원의 통일국가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였다. 그와 동시에 이들 ‘동이족’들을 주도한 부여족은 이 분파들을 독자적인 문명으로 통합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구려는 강력한 무력과 전쟁 기술로 당대 세계 최고의 국력을 자랑하고 있던 수나라를 결정적으로 멸망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당은 한당 봉건체제의 화이 제국주의 수립을 위하여 당시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던 고구려를 신라와 손잡고 붕괴시킨다.
고구려의 붕괴는 동아시아 역사의 가장 큰 비극이다. 고구려는 춘추전국시대에 형성된 중국 문명과는 전혀 다른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염제신농으로부터 시작하여 기자의 홍범구주, 주역, 노자의 사유, 조선의 신선 사상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발해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명의 특징인 신선 사상과 하나님 사상의 독자적인 전승을 파괴하고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교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명의 발전에 거듭된 방해 요인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백제의 멸망과 더불어 일본이라는 국가가 탄생하고 일본은 동아시아 동이족의 역사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고대 조선족과의 문명적 단절을 겪는다. 만주의 고구려족은 일부는 중국인이 되고 일부는 몽고족이 되었으며, 일부는 바이칼호로 도망가서 부리야트족 - 이들은 지금도 스스로 고려족이라 한다 - 이 되었고, 일부는 발해를 만드는 역할을 하였으며 일부는 신라에 통합되었다.
만주에서의 역사는 발해 건국 이후 신라와의 갈등과 당의 이이제이 정책에 의해 항구적인 전쟁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고구려의 일파인 거란족에 의해, 그 다음에는 몽고족에 의한 원나라, 그 이후에는 고구려의 일파인 말갈에 의해 통일되었으나 이는 중국인으로 동화되어 가는 과정에 불과했다.
즉 그들은 중국을 정복하고 지배종족이 되자마자 중국의 문명에 동화흡수되어 갔던 것이다. 결국 고구려의 독자적인 문명은 한편으로는 신라와 발해, 고려,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편린적으로 남아 지금까지 전달되게 된 것이다.
‘문화중국’으로 포장된 중화제국주의
한편 중국의 역사는 수당이라는 선비족의 국가, 거란족의 요나라, 말갈족의 금나라, 몽고족의 원나라, 말갈족의 청나라에 의해 지속적으로 정복됨으로써 부패한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진일보하는 제국의 일반적인
생성소멸의 법칙을 따르면서 현재의 중국으로, 현 중국인으로 되어갔다.
그리고 여기서 소위 화하족이라는 중국의 원래 민족에 대한 신화는 사실 가장 야만적이고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종족을 선진 문명과 대립하면서
민족 개념과 문화 개념을 연결시킨 춘추전국 시대의 지식인들의 사유와
연관되어 있다.
중국이 중국이 된 이유는 춘추전국 시대라는 전쟁을 통해서인 것이다.
이 시기에 일어난 위대한 사상과 문화, 전쟁 기술의 혁명이 그들 스스로
동이족에 대한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전화시킨 힘이다.
그리고 이 전쟁이 만들어낸 냉혹한 합리주의가 화이론과 결합해 중국의
문명이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문명은 바로 그 문명론의 바깥에 있었던 오랑캐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밖에 없었던 탓에 더욱 맹렬히 화이론이 주창되었고 주희에
의하여 공격적인 성격을 띠고 제국주의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제국주의는 주변 오랑캐를 격분시켜 당대 중국인에 의해 멸망당
하지 않기 위하여 중국을 멸망시켰고 기존 황제와 그 대리인을 대신하여 새로운 황제가 된 오랑캐와 그 대리인들의 사상이 되어 이제 오랑캐를
사냥하고 정복하는 악순환을 낳은 것이다. 서융의 진에 의해 시작된 중원
의 통일은 마지막으로 여진족에 의한 청나라로 발전하면서 오랑캐들은
그들의 영토를 중원의 영역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실체적인 역사이며 동아시아의 역사이다.
문명론으로서의 중화 제국주의는 이제 소위 ‘문화중국’으로 포장되어
나타난다. 이의 본질은 타국의 역사와 오랑캐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는 것이다.
중국의 유교 문명을 받아들인 모든 나라는 이제 중국의 역사이다.
고대 조선의 역사와 그 후예인 고구려 발해의 역사는 당연히 현재의 중국
판도 내에서 일어난 역사이니 중국사인 것이다.
티벳을 잔인하게 진압함으로써 권력의 최고 서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후진타오의 개인사는 중국 문명사의 다른 모습에 불과하지 않는가?
그것은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과정에서 각 민족의 가치를 부정한 극좌적 맹동주의와는 달리 대중국민족주의와 결합된 국가주의적 우경 노선이다. 중국이 예전에 한 번 정복했던 나라가 현재 그들의 판도 내에 있다면 그것은 중국의 일부인 것이다. 이것이 현재 중국의 위험한 국가주의적 제국주의의 이면이다. 사실 현재의 몽고국도 중국의 일부라고 중국인들은 생각한다. 몽고의 역사인 원사가 중국의 역사이고 그 때문에 현 몽고는 자기들이 힘이 없을 때에 소련에 강제적으로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가들은 중국의 역사에서 고대의 대부분이, 그리고 그들이 기록으로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주요 역사가 동이족의 역사이며 그들의 신화체계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것은 비중국적이다.
만약 한비자-공자적인 합리주의만을 중국의 사유라고 한다면. 하지만 중국의 역사는 고대 동아시아의 여러 종족들, 그리고 주요한 종족들인 화하족과 동이족의 역사이고, 고대 동아시아 제 종족이 공유해야할 역사라고 인정한다면 중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기록과 신화는 공유할 수 있는 문화이자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자양분이 될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국하고 동북공정이라는 전대미문의 역사 날조를 감행함으로써 중국이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날조된 중국 고대사
동북공정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중국사를 개관해 역사 날조가 시작되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자기들의 조상을 황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먼저 삼묘족이자 현재 중국 남방의 조상신인 염제신농, 즉 복희를 중국의 조상 종족으로 받아들이고, 황제와 탁록벌판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하였던 구려족이자 청구국의 천자인 치우 또한 자신들의 조상신으로 받아들이면서 황제, 염제,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삼았다. 현재의 중국인들이 이들 세 동이족의 족장으로부터 기원했다는 것은 신화로 포장된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염제와 치우 종족이 가진 문명을 받아들였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확실히 고대 조선족들은 치우 이래의 동이족 문명을 받아들여 근세 조선에 이르기까지 그 문명을 보존하였고, 일본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이 신선 사상 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동아시아 고대 만주의 홍산문화에서 나타나고 그 영향 하에 동양의 지중해인 발해를 끼고 발전한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명적 사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여성을 비하하고 평야에 거만한 성을 만들어 민중을 착취하였으며, 이를 위해 봉건 관료주의를 만들었고, 화이론적 제국주의를 만들었다.
그에 비해 염제와 치우를 조상으로 하는 고대 조선족과 고구려는 여성을 신성화하고, 산을 중심으로 정신과 육체의 수련을 중시하였으며, 백화제도로서 만장일치의 신권정치를 취했다. 관료주의를 반대하고 제가회의 - 몽고에서는 이를 쿠릴타이라고 하였다 - 를 중시하였으며, 만민평등의 사유 - 이것은 나라를 세운 자들이 스스로를 황금 종족이자 하늘의 아들이라는 사유와 반대되지 않았다 - 를 제기하였다.
중국 문명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이 문명은 점차 약화되어 갔고, 특히 고구려의 멸망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에 필자는 고구려의 멸망을 동아시아 역사의 최대 비극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이렇게 염제와 치우마저 자신들의 조상으로 만든 데에는 민족 협화라는 중국의 내재적 고민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적은 인구에 광범위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비중국인들이라는 모순을 해소해야하고 이를 위해 무력만이 아니라 ‘신화의 공유’라는 고도의 이데올로기적인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업은 티베트에서 실패했다.
그 결과 유혈 진압이 나타났고, 이는 중국이 두고두고 풀어야 할 숙제가 된 것이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헤쳐 나와 덩샤오핑의 인정을 받아 현재 최고의 권력을 획득한 후진타오와 중국 지배 세력은 당연히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동북의 문제’인 것이다.
중국이 동북 삼성이라 부르는 지역은 역사적으로 중국인의 영토가 된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실효적인 지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최근인 1860년대 청에 의해 만주 봉금이 해제되었을 때이다. 청의 여진족은 나라를 잃을 때에 만주로 돌아가고 중국인들에 의해 만주가 점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봉금체제를 만들었지만 러시아의 남하로 만주의 정세가 급변하자 만주로 인구를 보냈다. 그 결과 만주는 중국인이 다수가 되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그와 더불어 청은 1880년대 이래 간도협약을 윽박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간도는 길림성과 흑룡강성을 포괄하여 고려 이래로 우리나라 땅이었다.
먼저 서희가 영고탑까지 정복하여 흑룡강을 고려의 영토로 편입시켰고, 일시적으로 여진족을 살게 하였지만 그렇다고 영토로서의 의식을 버린 적은 없다. 명의 주원장이 일어나자 고려 말 조선 초에 상호 간에 영고탑 이동으로 연해주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땅임을 국서로 인정했다. 세종은 바로 영고탑 이동의 땅을 상세하게 조사하여 팔도지리지에 수록하였으며, 조상이 일어나고 왕업을 일으킨 조상의 땅 - 이성계 일파는 두만강에서 흑룡강 사이를 지배했던 호족이었다 - 을 한치도 내어놓을 수 없다면서 여진족을 정복하여 몰아냈던 것이다.
그 이후 영정조 이래로 간도와 연해주로의 이주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에는 연해주와 간도, 길림성, 흑룡강성이 전부 조선의 영토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가 청나라로부터 만주를 집어삼키려는 야욕으로 만주 철도 부설권과 함께 국제법상 조약상의 효력이 없는 간도협약으로 영고탑의 동쪽 땅을 조선은 불법적으로 빼앗겼던 것이다. 러시아에게 연해주를 빼앗긴 조선은 다시 일본에 의해 간도를 청에 빼앗기는 사태도 겪었다.
극단적 민족주의는 곤란
문제는 일제로부터 해방이 분단으로 이어지면서 러시아와 중국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북이 우리나라 땅인 연해주와 영고탑 동쪽의간도 땅이 우리 영토임을 주장도 못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일본은 1960년대에 간도협약이 무효임을 선언하였지만 그로 인한 우리의 피해에 대하여 일언반구의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일본의 국가주의자들이야 내버려두고라도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함께 투쟁한 중국이 이제 와서 우리 민족 전체에 이런 후안무치한 행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뻔한 일이다.
이는 향후 간도가 중국의 입장에서 중요한 분쟁거리가 될 것이며 그 중심에 있는 조선족의 민족 의식 해체와 중국화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작업이 바로 동북공정인 것이다. 동북공정은 한편으로는 만주를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 작업이면서 동시에 고대 조선족이자 고구려의 후예인 여진족과 조선족의 민족적 정체성을 해체하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작업은 조선족에게 이미 상당히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조선족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별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과 문화적 독자성에 대한 자부심이 전혀 없다는 데에 있다. 이는 공히 남북 정책상의 실책으로 인한 것이다. 조선족이 번영하면서 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키우는 한편 중국인의 일원으로서 중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두고 마치 만주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을 하면서 실은 아무런
능력도 책임도 없는 일을 일삼은 탓이요, 북의 경제난으로 인하여 조선족
이 강한 연대를 가지고 있었던 북에 의지하지 못할 상태에 이른 탓이다.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것이 조선족 스스로 독립하게 하여 동북아의 평화와 연대를 이루는데 일조할 수 있다. 연해주의 고려족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동북아의 평화에 지도적인 민족이 되게 하는 일이다.
자연히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은 강화될 것이고 이러한 문화적 고유성은
중국과 러시아의 문화를 발전시킬 것이며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를 가능
하게 할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남북이 서로 도와 평화를 위한 자주적인 연대에 이르는 길이고,
국외의 민족 구성원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살려나가 국제 평화연대의
주요한 지도적 민족이 되는 바른 길이다.
최국태 씨는 1988년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 1999년 같은 대학원
서양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10년째 우리 민족의 사상과 상징체
계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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