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스페셜·추적

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편-금관은 왜 사라졌는가

설레임의 하루 2011. 4. 1. 03:11

 

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편
         금관은 왜 사라졌는가


 

▣방송 : 2010. 11. 25 (목) 22:00~22:50 (KBS 1TV)
▣진행 : 한상권 아나운서
▣연출 : 황용호 PD
▣글 : 정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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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밤 10시로 이동한 역사스페셜
첫 프로그램! ‘금관은 왜 사라졌는가’

화려함과 웅장함의 극치! 신라 금관
전 세계 고대 금관 중 반 이상이 신라의 것,
한반도에서도 오직 신라 땅에서만 출토된 금관

그야말로 황금의 나라, 신라

그러나, 금관의 시대는 150여 년 만에 막을 내린다

신라에 어떤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1500년 전 신라, 금관의 비밀을 따라가 본다


 

신라금관은 왕만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래픽으로 복원한 환두대도와 금관의 주인공 ▲발견 당시 환두대도
-천마총, 환두대도를 찬 금관의 주인공
경주 대릉원에서 발견된 천마총 금관. 천마총의 피장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황금제품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허리춤에서 발견된 ‘환두대도’는 무덤 주인의 신분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었다. 봉황문 황두대도를 허리에 차고, 화려한 금관을 쓴 천마총의 피장자는 바로 신라왕이었던 것이다.

-금관은 왕의 전유물이 아니다!
천마총 금관 발굴 당시 학계는 금관은 왕이 쓰는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남대총 출토 금관은 우리의 상식을 흔들었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발견된 화려한 금관, 엄청난 양의 장신구, 결정적으로 은제허리띠에 새겨진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씨는 여자가 사용하는 띠라는 뜻의 명문이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황남대총 남분에서는 장신구 대신 많은 양의 무기류가 출토 되었다.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는 금동관도 발견 되었다. 북분의 피장자보다 신분이 낮은 왕으로 추정되는 남분의 주인공! 왕이 묻힌 남분과 잇대에 북분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놀랍게도 북분의 주인공은 여자의 왕비, 왕의 전유물로 알려졌던 신라 금관은 왕비도 썼던 것이다. 뿐만아니라 금령총의 유물추적을 통해 15세 왕족 어린이도 금관을 착장한 사실이 밝혀진다.

 

금관의 주역! 김씨 왕족

▲돌무지덧널무덤 구조
-김씨 왕족 금관의 시대를 열다.
미추왕 이후 석씨에게로 넘어간 왕권, 다시 힘을 모은 김씨계는 석씨를 물리치고 왕권을 집권한다. 4세기 말, 바로 내물왕 때다. 내물왕은‘이사금’(尼師今) 대신 ‘마립간’(麻立干)으로 바꾸고 자신이 첫 번째 마립간이 올랐다. 왕위쟁탈전 최후의 승자인 김씨 왕족이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김씨 왕족의 전용 묘역인 대릉원의 무덤도 마립간의 권위에 걸맞게 크고 웅장한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조성했고, 무덤에 넣는 부장품도 화려한 황금 유물로 채웠다. 마립간의 우월적 지위를 나타내는 것, 그것의 상징으로 금관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절대적인 존재! ‘마립간’(麻立干)
마립간은 모든 신라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궁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역할도 겸했다. 마립간이 쓴 금관은 신과 신라를 이어주는 국가제사장의 상징과 동시에 현실정치를 구현하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현지 취재, 금관 장식의 비밀 추적
▲카자흐트산의 금관 ▲황금인간
-중앙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동일 모티브의 금관이 존재했다!
신라인의 뛰어난 미적 감각과 왕족의 위엄이 녹아있는 신라 금관! 이 중에서도 세 그루의 나무와 사슴뿔을 모티브로 형상화한 신라금관 장신은 금관의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이 독특한 장식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것은 다른 세계와의 연결이었다. 바로, 중앙 유리시아 초원지대가 활동무대였던 북방유목민의 세계. 제작진은 북방유목민의 금관을 찾아 카자흐스탄으로 떠난다. 제작진은 카자흐스탄 에르미타주 박물관 전시 중인 사르마트 금관과 크라스노야르스크 박물관에 보관 중인 사슴뿔 관을 찾아볼 수 있었다. 신라보다 앞선 시기, 동일한 모티브의 금관이 중앙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이곳에서도 존재했던 것이다.

 

6세기, 금관은 왜 사라졌나?

▲황룡사 복원 화면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은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법흥왕! 그에 따라 신라사회전반에 개혁이 일어났다. 마립간 시대의 거대한 무덤은 사라지고, 거대한 국가사찰이 들어섰다. 신라 최대 규모의 사찰, 황룡사를 조성하기 시작했고 무덤 속 황금은 황금빛 부처로 바뀌었다. 황룡사에서 출토된 황금사리장엄 유물은 김씨 왕족의 황금문화가 무덤을 떠나 탑으로 옮겨왔음을 보여준다. 김씨 왕족과 함께 사라진 금관! 금관은 왜 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