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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가림토문자(가림다 문자)
가림토(가림다)문자는 고조선 단군 갸륵 BC2181년에 만들었다.
단군세기(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이암(李巖)이 저술함)에 제3세 단군가륵이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한단고기의 단군세기편(임승국 번역, 정신세계사 출판 67쪽)의 기록에 의하면
“경자2년(BC2181) 당시 풍속이 같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녹도문자)가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백리 되는 나라의 땅에서도 통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이에 삼랑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正音)38자를 만들케 하니 이를 가림토(加林土)라 하였다.”
가림토 문자는 기록대로라면 4200여 년 전의 글자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영어 알파벳보다도 1000년이나 더된 오래전의 글자이다.
가림토 문자 이전에 단군조선 이전시대인 배달국으로부터 계속 사용해온 진서(眞書), 즉 녹도문자(사슴의 발자국을 형상화한 문자)가 있었다. 그러나 문자 체계가 이루지지 않아 배움이 부족한 일반 백성들이 녹도문을 사용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단군세기에 이외 나오는 가림토 문자의 기록으로는.
이태백전서(李太白全書)에 “대진국(大震國:渤海)에서 가림토 정음표기로 당(唐)나라에 글을 보낸바 있었는데, 조정에서 해독하는 사람이 없어 이태백이 해독해주었다”는 내용도 함께 실려 있다.
한단고기에 나와 있는 가림다 문자는 그 신빙성에 문제를 삼아 학계에 의하여 아직 인정받지 못했다. 가림다 문자가 실존 했으며 고조선 때 만들어 졌음을 입증해야만 글자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에 영향을 끼쳤을 우리 고대의 문화를 찾을 수 있다.
우리민족의 영토였던 만주에는 가림토 문자 비석이 있다 . 그 비석을 탁본한 것이 높이 2m, 폭이 32㎝인 것이라니 비석은 이보다 더 클 것이다. 가림토 문자의 증거로 제시되는 탁본의 원래 소장자는 이상백 교수로 1930년대 만주에서 탁본을 했다고 한다
만주지역에서는 옛 토기 파편에서 가림도 문자가 세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명마산 중턱에 있는 바위(가로1.8m,세로3.4m)에서 가림토로 추정 되는 문자 다수가 새겨진 것이 발견 되었다.
이 바위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이나, 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삼천포 남쪽에 있는 남해 섬에는 우리나라의 고대 문자로 추정되는 "남해각서’가 있다.
가림토 문자가 옛 부터 있어 왔다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지만 학계에서는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찾고 있어 아직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옛 서적이나 바위에 새겨 진 글자나 발굴되지 않는 옛 무덤에서 가림토 문자가 나올 수도 있다. 학자 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가림토 문자가 먼 옛날부터 우리민족이 만들어 써왔다는 고고학적 근거를 찾고 그 문자가 우리의 민족의 권역이였던 동남아뿐만 아니라 인류에 문화에 끼친 영향을 찾아야겠다.
위와 같이 가림토 문자가 옛 부터 있어 왔다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지만 학계에서는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찾고 있어 아직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훈민정음은 고전은 모방하였다.
한글과 닮은 글자가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과 모음은 천지인의 천부경 사상에서 따왔다고 했지만 세종신록에 “한글은 고전(古篆)에서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최만리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에서 “전조선 때부터 전해오는 언문 을 빌려 쓰신 것이긴 하지만......”라고 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 지기전 분명 한글과 모양이 같은 글자가 민간에서는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고전 어떤 것인가를 써 주지 않았다. 그래서 세계의 학자들은 몽골의 파스파 문자에서 따왔다고 믿고 있고, 일본의 학자들은 한때 일본의 신대문자를 모방하였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가림토문자에서 훈민정음이 만들어졌다.
가림토문자는 4200여 년 전 고조선 단군갸륵 때 만든 글자로 가림토문자 38자중에 28자의 모양을 따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세종신록에 보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최만리 등이 반대하는 상소문에는 훈민정음은 언문을 빌려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민간에서 쓰던 언문이 가림토문자 였을 것이다.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用音合字盡反於古實無所據(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근본 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전혀 옛 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借使諺文自前朝有之以今日文明之治變魯至道之意尙肯因循而襲之乎(전조선 때부터 전해오는 언문 을 빌려 쓰신 것이긴 하지만, 지금은 한자를 써야 할 때인데 어찌 지나간 것을 따르려 하시오니까?)
諺文與文字誓不干涉專用委巷俚語者乎 (언문은 한자와는 서로 아무런 상관됨이 없는 시골 것들이 쓰는 말일 뿐이옵니다.)
조선 세조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28자의 근본이『징심록』의 가람토문에서 취해졌다.”고 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강단학계에서 가림토문자를 아직 인정 하지 않는다. (한글과 같고, 만든 년대 까지 있으나 의문점이 많고, 문자변천사에 맞지 않고, 아직 확실히 고조선 때 가림토로 쓰여 진 문자를 찾아 입증하지 못했다.)
가림토 문자가 옛 부터 있어 왔다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지만 강단학계에서는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찾고 있어 아직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옛 서적이나 바위에 새겨 진 글자나 발굴되지 않는 옛 무덤에서 가림토 문자가 나올 수도 있다. 학자 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가림토 문자가 먼 옛날부터 우리민족이 만들어 써왔다는 고고학적 근거를 찾고 그 문자가 우리의 민족의 권역이였던 동남아뿐만 아니라 인류에 문화에 끼친 영향을 찾아야겠다.
(가림토문자)
(한단고기의 가림토문자-KBS 역사스페셜)
(만주지역에서 발견된 가림토문자 비석 탁본)
(경북 영천 영미산에 바위 새겨진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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