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처녀잉태한 박혁거세와 성모 파소

설레임의 하루 2009. 6. 9. 23:34

*출처:다음카페-황우석광장  글쓴이: 윤복현     http://cafe.daum.net/46st/BRrk/67829

 

 

 

 

 

처녀잉태한 박혁거세와 성모 파소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도 성모로 기록하고 있다. 

줄기세포1번에 대한 서울대조사위의 처녀생식발표이후, 일부 근본주의 개독교 신학자들은 예수의 처녀잉태설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면서 호돌갑을 떨기도 했다. 

정명희 서울대조사위의 자백처럼 유전자 각인(일치)검사도 하지 않고 처녀생식이라고 우기는 건 마치 아버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하고서 처녀잉태라고 억지주장하는 소리와 같다.
 
남자의 정자없이 여자가 무슨 수로 임신을 할 수 있나?

아직도 초딩들도 다 알고 있는 기본 의학적 상식을 부정한채, 정자없이 처녀가 임신을 했다는 반과학적 진리를 의심없이 믿으며

(굳건한 믿음은 의심에서 생긴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독교인들이 정말 한심스럽다 할 것이다.

설령 남자없이 인공수정으로 임신했다해도 정자는 꼭 필요하다. 

처녀잉태니 성령잉태니 하는 소리는 고대에 처녀가 혼인전에 임신하여 난 아이가 크게 되었을 때 아버지를 모르는 출생의 비밀를

감추기위해 만든 설화나 신화라는 것 쯤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평신도들의 종교.인류문화학에 대한 인식부재라 할 것이다. 

아마도 당시 피임도구들이 많았다면 처녀잉태니 성령잉태니 하는 소리는 크게 줄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처녀가 강간범에게 당해서 큰 인물을 출산했다면 처녀잉태. 성령잉태설화는 불가피수 밖에 없다.

참고로 역사적 예수연구와 관련하여 예수는 당시 로마식민지 상황에서 로마군인들의 사생아라는 설도 있다.
 
정치종교집단의 권력의식에는 수치스러운 역사적 사실은 감추려하거나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심리가 있기 마련이다.

 

고대에 사생아 출신의 왕들은 신화.설화라는 문학적 도구를 통하여 성스러운 처녀잉태로 포장되었다.

예수도 마찬가지다.

예수는 아마도 로마식민지 상황에서 로마군인들에 의해 마리아가 강간당하여

출생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러한 사생아라는 사실을 전제로 예수설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처녀잉태-십자가의 죽음-3일만에 부활이라는 도식을

가지고 있는 이집트 태양신 호루스의 신화의 도식에 살을 붙여서 복음서를 편집했다고 한다면 복음서만 읽어 본 평신도들은 그걸

사실적으로 수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종교경전을 보기 전에는 그 경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하고 보아야 메세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형성될 수 있다. 그것을 전 이해라고 한다.

 즉, 예수신화의 사실여부보다는 복음서가 주는 메세지의 교훈에 촛점이 맞추어지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그 복음서 내용은 현실을 이기는 에너지로 작용되는 것이다.

그것이 올바른 성서이해이며, 살아있는 설교의 배경이 된다 할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그러한 진실을 교육을 통해서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런다고 해서 실제 보지도 않고 편집을 통해서 구세주로 만들어져 있는 복음서속의 예수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교육은 결국 평신도들로 하여금 예수의 역사적 실존여부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문제에 대한 인식과 현재의

문제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대안과 의지를 심어주기 때문에 효과적이고 가치가 있게 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이 믿음의 실체라는

인식도 심어주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대중들로부터 비난받지 않고 빛과 소금의 역할로써 기독교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격화된 우상으로서의 예수에 촛점을 맞추다보면 메세지의 의미보다는 오로지 "오직 예수"에 포커스를 맞추어 대중들에게

무료함과 공허함과 영양가없는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게 만들고 만다. 그것이 종합학문으로써의 신학수준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추구할 때 종교경전의 메세지 또한 현재에서 살아나는 것이다.
 
혼인전에 박혁거세를 잉태한 '파소'라는 여성은 북부여를 개국한 해모수의 손자인 해부루가 해모수조를 무너뜨린 고두막한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지금의 북간도.연해주 지역에 해당하는 땅에 동부여를 개국했는데, 아마도 해부루 왕의 딸인 것 같다.

그리고 파소와 이름모를 남자는 사랑했던 관계였던 것 같다. 

안 그랬으면 일국의 공주가 몸을 함부로 놀릴 수 없는 일이다.  
 
[자료]桓檀古記-高句麗國本紀

斯盧始王仙桃山聖母之子也 昔有夫餘帝室之女婆蘇 不夫而孕 爲人所疑 自嫩水逃至東沃沮 又泛舟而南
 

下抵辰韓奈乙村 時有蘇伐都利者 聞之 往收養於家 而及十三 岐祥然夙成有聖德 於是辰韓六部共尊爲居 世干 立都徐羅伐 稱國辰韓

亦曰斯盧

斯盧 (사로)의 始王(시왕)은 仙桃山(선도산)의 성모의 아들이다.

옛날 夫餘帝室(부여 제실)의 딸 婆蘇(파소)가 있었는데,남편없이 아이를 배었으므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嫩水(눈수)로부터 도망쳐

東沃沮(동옥저)에 이르렀다.
 
또 배를 타고 남하하여 辰韓(진한)의 奈乙村(나을촌)에 와 닿았다.

이때 蘇伐都利(소벌도리)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가서 데려다 집에서 길렀다.

나이 13세에 이르자 지혜는 빼어나고 숙성하고 성덕이 있는지라, 이에 진한 6부의 사람들이 존경하여 居世干(거세간)으로 삼고, 도읍

徐羅伐(서라벌)을 세우고 나라를 辰韓(진한)이라 칭하고, 또한 斯盧(사로)라고도 하였다.
-----------------------------------------------------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를 지니고 있다.

나정우물에 표주박 모양의 알이 있었고, 왕만이 탈 수 있는 용마가 무릎을 꿇고 지켰다는 것은 박혁거세가 왕의 혈통임을 증명해 준다.

그렇다면 박혁거세는 부여왕실과 어떤 혈연적 관계가 있었을까.
 
이에 대해 '삼한비기(三韓秘記)' 구지(舊誌)에는 "박혁거세의 생모는 본래 부여제실(扶餘帝室)의 여자(공주)다"고 했다.

즉, "사로(斯盧: 신라)의 시왕(始王)은 선도산(仙挑山: 경주) 성모(聖母)의 아들인데, 옛 부여 제실(왕궁)의 여자 파소(婆蘇)가

남편없이 처녀 잉태하여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게 되자 눈수(嫩水: 흑룡강성에 인접한 강, 송하강의 지류)로부터 동옥저에 이르러

또 다시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내을촌(柰乙村)에 이르러… 거서간(임금)이 되고, 서라벌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진한 또는

사라(斯羅: 신라)라 칭하였다."

또 김교헌(金敎獻)의 '신단실기(神壇實記)'에는 "부여제실의 여자 동신성모(東神聖母)인 파소
(婆蘇) 남자와 혼인하지 않은채

잉태하여… 진한 땅에 와서 혁거세를 낳았다…

계림서악(鷄林西岳)에 성모사(聖母祠)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성모는 지선(地仙)이 되고 혁거세는 천선(天仙)이 되었다고 한다.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의 처녀 잉태설을 연상케 한다.

동국여지승람,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이적에도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경우 파소성모의 잉태지역이 부여가 아닌 중화(中華) 또는 한실(漢室)로 적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오기(誤記) 아니면 왜곡이다.

즉, 당시 우신관(佑神館)에서 관반학사(館伴學士)로 위장한 북송(北宋) 제6대 황제 신종(神宗)의 대신 왕보(王輔)의 흉계에 의한 왜곡

날조일 수 있다는 말이다.

왕보는 김부식이 접한 인물이다. 사학계에 연구과제로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