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고구려.당나라의 속국-흉노족 신라 김씨왕조

설레임의 하루 2009. 4. 22. 11:29

*출처:다음블로그-한국사랑  글쓴이-지성 

 

 

 

 

고구려-수렵도

 

 

한반도 동남부지역을 두고 흉노족 김씨세력들(가야.신라 김씨왕족)

 

흉노족 왕망도 한나라를 무너뜨린 후에 동족인 북부의 흉노족을 치기위해 고구려에 군사를 요청했으나, 서기 400년 신라의 요청으로 

광개토왕이 내려보낸 5만의 군대가 가야와 왜의 연합군을 궤멸시키고, 신라의 수도 금성에 주둔군을 남겼다.

망국의 위기를 벗어난 신라의 왕과 그 일행이 직접 평양에 이르러 고구려왕에게 조공을 바친 것은 물론이다. 

광개토왕이 세상을 떠난 1년 뒤 그 왕릉에서 크게 제사를 지내고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청동 그릇이 신라 중상급 귀족의 무덤인

경주 호우총에서 나온 것이 당시의 국제정치 상황을 증언한다.

서 기 495년 만들어진 중원 고구려비에서 신라왕은 ‘동이매금(東夷寐錦)’으로 일컬어진다.

‘매금’이란 신라왕의 고유 칭호였던 ‘마립간’의 다른 표기이고, ‘동이’는 고구려를 중심으로 신라를 보는 시각을 나타내는 용어다.

동북아시아를 하나의 세계로, 그 중심을 고구려로 상정한 고구려인의 의식이 이 한마디에 담겨 있다.

 

흉노족 가야.신라 김씨왕족은 배달국에 도전하다가 치우천황에게 77번 얻어터져 결국 신하가 된 황제헌원의 후손들이다.

(김유신 비문). 애네들이 흉노족과 혈통이 같은 선비족 당(수)나라와 손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진짜 이유이며, [한단고기]에 

기록되기를, 연개소문이 고구려.신라.백제가 3한 연합군대로 당나라를 치고 중국대륙을 공평하게 배분하자고 제안하니 신라의

김춘추가 거부한 진짜 이유다.

신라=마한의 토착세력+만주에서 도망온 진한유민들+부여의 박혁거세세력+
흉노족 김알지세력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가야·신라

 고분과 유사한 북방민족의 쿠르간, 훈족의 동복, 김해 대성동에서 출토된 동복, 훈족의 편두.


한나라를 멸망시킨 흉노족 김왕망의 신나라가

10년만에 한나라에 멸망하자

몰살을 피하여 산동지역에서 배를 타고

한반도로 들어온 흉노족 김씨왕족


 

 

결국 흉노족이 쿠테타로 박.석씨 왕조를 무너뜨리고 신라의 권력을 잡아 한인-한웅-단군조선을 계승한 동방의 주인

동방족을 분열시켜 버리고, 한족중심의 역사를 전개시키는데, 공헌했다.

 흉노의 시조는 단군의 신하(열양의 욕살) 색정이다. 워낙 정치를 개판으로 해서 민심을 상실하자, 단군이 내몽골 약수(흉노본거지)에

유배시키고 나중에 용서를 하여 약수에 살게 하자, 흉노의 시조가 되어 칼잡이들이 되어 유라시아 초원을 휩쓸었으며, 단군3조선 중

번조선의 제후국이 되어 조공했다.[한단고기]


 

지도:아!고구려-단군조선의 영역을 다물한 광개토태왕시대의 최대영역


* 단군3조선(마.번.진)을 회복(다물)한 고구려의 광개토태왕

단군3조선의 영역=한반도+일본열도(대마도.구주)+만주(연해주 포함)+시베리아+중국 서북부.동남부지역+티벳(토번)+

중앙 아시아 초원지대=5색 인종=9한=9이=9려(중심종족=치우족=구리.고리.코리.구려족=청동기시대의 주역

지도:고구려.신라.백제.가야(4국 시대)

 

백제와 신라의 중국진출문제

백제는 고구려의 후예들이다.

유리가 왕위에 오르자, 소서노가 온조.비류를 데리고 당시 진한과 번한의 경계지역인 지금의 발해만에 어하라를 개국하고, 비류가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온조는 마한이 쇠퇴한다는 측근들의 얘기를 듣고 소서노와 함께 배를 만들어 타고 서해를 가려질러 지금의 인천 소래

(소서노가 오다)포구로 들어와 마한의 진왕에게 요청하여 정착할 땅을 한강변에 잡는다.

풍납토성은 백제한성이 맞다. 풍납토성은 토성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마한시대의 토성기술로 건축한 것이다.

그림:해상제국 백제의 무역거점역(22담로지역:담로책임자는 황족들)

 

비류세력은 나중에 온조세력에게 통합되어 온조백제는 확장된다.

이후 졸본부여를 개국한 고두막(동명성왕)의 후손 구태세력이 북한의 평양부근에 대방군을 설치하여 고구려와 백제지역으로

진출한다.

강력한 기마군대로 구태세력은 온조세력을 통합하여 구태백제를 개국한다.

그리고 일찌기 일본열도를 공략하여 친백제세력을 만들었고, 선조 고두막이 한나라와 싸워 설치한 소위, 한4군(사실은 조선4군)

지역인 요서지역에 진출하여 북경지역을 공격하였고, 중국의 동남부지역과 동남아 지역을 공략하여 22담로(무역관장기구)를

설치하여 중국문헌들이 극찬한대로

"비로소 고두막의 후손인 구태백제가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

그러니, 온조백제로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백제멸망 후 산동지역의 신라방은 신라하고는 무관한 백제인들이 거주한 지역인데, 백제가 망하니 신라방으로 바뀐 것이다.

백제의 해상무역은 한중일 해상무역의 중심거점인 완도(청해진)을 거점으로 장보고를 통하여 부활된 것이고, 신라는 장보고를 품지

못하고 암살했던 것이다.


신라는 중국진출하고는 무관하다.

신라는 한반도 동남부지역에서 바둥바둥하다가 결국 위기에 몰리니 당나라를 끌여들여 고구려. 백제를 몰살시킨 것 밖에 없다.

내세울게 있다면 말타고 칼들고 초원을 누비던 흉노선조들의 아 옛날이여~!밖에는 없다.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입증된다.

한반도.만주.연해주.시베리아에서는 고구려.대진국의 유물들이 무수하게 출토된다.

서해바다로 진출하기 좋은 한반도 서울.경기.서남부지역과 동남아시아.일본열도에서는 마한.백제유물들이 무수히 출토된다.

한반도 동남.동북지역에서는 신라.가야 유물들이 무수히 출토된다.


그림: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 김씨왕족의 금관(스키타이 양식)

 

신라가 자랑할 게 있다면 흉노족 김씨왕족들의 세련된 스키타이 양식의 금장식 유물들과 백제의 기술이 바쳐준 석굴암 등 신라만의

통일이후 불교문화다.  

황남대총 출토 유물들(중앙 아시아 투르크 문화양식)


 

세계최고의 조형미-석굴암-백제예술의 숨결이 느껴지는 유물이다.

일제가 해체할 당시의 석굴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