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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c 이전 고조선시대에 이미 <선철>이 제련되었다. <펌>

설레임의 하루 2009. 3. 14. 01:54

기원전 6c 이전 고조선시대에 이미 <선철>이 제련되었다.

  • 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글쓴이: 心濟

 

정말 중요한 내용입니다.
고조선 이전의 청동기 일관제조시설이 현재 < 通化 >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선 처음입니다.
서토왕조의 청동기는 아연 함유량이 무척 적습니다. 당시 아연을 섞어서 용융점을 낮추는 대단한

기술을 우리의 조상님네 이외엔 몰랐다는 이야기. 
청동기 합금기술이 제철기술보다 더 어려운것으로 알고 있고 철기가 <히타이트>에서 시작되었다는

서양사관의 주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은  정말 획기적인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사용하는 유기 방짜기술은 (놋쇠) 아무나 못하는 기술로 서토인도 , 왜인들도 왕의 식탁에

놓이는 수라에 독을 검출하는 방짜鍮器를 사용하지 못하고 오직 조선만이 사용했다는것은 금속,

비금속 할것없이 제련,합금기술의 정수를 꿰뚫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배워왔던 식민사관의 주장과 정면배치되는 사실입니다.(운영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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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쇠반달칼(길이 1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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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 구석> 유적과 철기문화  


스틸월드투어-고조선 철기문화 기행 

< 범의 구석> 유적과 철기문화  청동기 토양에 자라난 철기의 싹



 제5문화층-완전 용융상태 선철 주물품 '획기적'  제6문화층-생산도구 '봇물'..철제 보편화 입증 고조선의 철기 문화는 청동기 문화가 광범위하게 번성하던 토양 위에서 자라났고 새로운 철기 문화가
출현해 전파되면서 튼튼하게 발전해 나갔다.

때문에 우리는 현재 그 유적을 직접 찾아 보기가 무척 힘들다.

 

1988년 평양의 「조선유적유물편찬위원회」에서는 1만여 점의 유물을 전20권에 걸쳐서 <조선유적

유물도감>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그 가운데 고조선 시대의 유물에 대한 도감은 1995년 <한민족의 문화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신문

 방송인클럽이 서울에서 출간했다.

이 자료에 나타난 고조선의 초기 철기 문화를 살펴본다.

<범의 구석> 유적은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읍 서쪽의 두만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유적층 가운데

제5문화층은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5세기에 해당하는 문화층이다.

 범의 구석 유적(5문화층)에서 쇠도끼, 쇠창, 쇠대패날, 쇠끌 등 적지 않은 철기가 나왔다.

 

쇠창은 청동기시대의 버들잎 모양의 훅요석 창끝과 비슷하며 구두칼 모양의 쇠칼도 이전 시기의

점판암으로 만든 칼과 비슷하다.

 

청동기시대의 석기를 그대로 모방한 이와 같은 철기의 형태는 이곳의 유물이 철기시대에 들어 선

초기의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북한 학자들은 여기서 출토된 쇠도끼는 완전 용융상태에서 얻어진 선철 주물품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원전 6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질 좋은 선철제 도끼를 생산했다는 것은

세계 제철 기술사에서도 그야말로 보기 드문 예이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경 선철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었으며, 유럽에서는 14세기가 되어서야

액체상의 선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 남한의 학자들은 대개 한반도에서 철기시대가 빨라야 기원전

4세기 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에 해당하는 범의 구석 유적 제6문화층에서는 이전에 사용되던 석기가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쇠도끼, 쇠낫, 쇠반달칼, 쇠자귀, 쇠낚시 등 여러가지 종류의 철제 생산도구가

수없이 많이 나왔다.

이것은 이 시기에 이르면 이 지역에서 철기 사용이 보편화됐음을 말해준다.

임경순(포항공대 교수)

 

 

 

 기원전 7세기 철기유물이 한반도 남부에서도 출토되다.

 

그동안 한국고고학계에서 한반도의 철기제작 상한선은 2000년을 넘지 못 한다고 우기다  북한< 범의 유적>

에서 기원전 6세기 철제농기구가 발견됨에 따라 저 이론이 힘을 쓰지 못하였는데 결국은 무너지기 시작하는군요.(운영자)

 

 



BC 7세기 철기유물 강원 홍천서 출토

"철기시대 개막 앞당길 획기적 자료" 기원전 7세기 무렵에 제작돼 사용한 것이 확실시 되는 철기 유물이
강원도 홍천에서 출토됐다. 이는 기원전 300년 무렵에 철기가 제작, 사용됨으로써 한반도는 '초기

철기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한국 고고학계 통설에 일대 의문을 던지게 하는 획기적 성과가 될

전망이다.

강원문화재연구소(연구실장 지현병)는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는 국도 44호선 홍천 구성포-

두촌간 도로확ㆍ포장 공사구간에 포함된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 1246-16번지 일대 12만6천509㎡

(3만8천268평)를 지난해 2월 이후 발굴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 한 주거지에서 송곳과 같은 형태의

단조품 철기 1점을수습했다고 21일 말했다.

지현병 실장은 "이 소형 철기는 무문토기가 출토된 58호 주거지에서 유물을 수습한 뒤 바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면서 "주거지 내부에서 수거한 목탄(숯) 시료를 채취해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연구원 AMS연구실에 탄소연대 측정을 의뢰한 결과 BC640-BC620년(BP 2540±80, BP 2500±50)이라는연대를 얻었다"고 전했다.

지 실장은 "청동기시대 중기 또는 후기에 만들었다고 판단되는 주거지에서 철기가 출토된 것은 국내

최초이며, 특히 그 연대가 기원전 7세기로 확인된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면서 "이는 철기가

한반도에 출현한 시기를 훨씬 앞당길 수 있는 획기적 자료일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뚜렷한 정설이

확립되지 못한 청동기시대의 하한 연대도 결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소 최종모 조사3팀장과 현장책임자 김권중 연구원은 "후대에 만든 철기가 지층 변화 등으로 인해

폐기된 청동기시대 주거지에 휩쓸려 들어갔을 가능성을 두고 유적을 더욱 세밀히 검토한 결과,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주거지가 활용된 청동기시대 제품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철정리Ⅱ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적석 유구(돌무지 흔적) 1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66기ㆍ주구묘
(周溝墓) 9기ㆍ지석묘 하부구조 1기ㆍ소형 석관묘 2기, 철기시대 주거지 19기, 삼국시대 석실묘

4기를 비롯한 총 230기 이상의 유구가 확인됐다.

이 중 청동기시대 대형 주구묘는 국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독특한 묘제(墓制)라는 점에서 주목된

다. 주구묘란 도랑처럼 땅을 파 사방으로 두른 무덤으로 이번 철정리 유적에서는 이런 주구가 평면형태 기준으로 볼 때 모두 장방형이었다.

이 중 2호 주구묘는 길이가 무려 43.28m에 이르지만(폭은 3.96m) 훼손된 부분을 감안하면 원래 길이는

45m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이 외에도 철정리 유적에서는 한강 유역 한반도 중부지방 철기시대 문화층에서만 독특하게 출현하는

평면 呂자형과 凸자형인 주거지가 다수 발견되고, 그 중 일부는 벽체 시설과 부엌 아궁이를 비롯한

내부 구조가 완벽하게 남아 있어 당시 가옥 구조 해명에 결정적인 자료가 될 전망이다. -운영자씀-